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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멸의 공존, 공존을 위한 박멸

: 생명안보 서사에 대한 비판적 소고

김준수 (한국과학기술원 인류세연구센터)

김아람 작가의 ‘박멸의 공존’은 한국으로 수입되었다가 방류, 방치된 뉴트리아와 이들을 둘러 싼 한국의 외래종 관리 방식과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김아람 작가는 한국의 외래종 관리 정책이 가지고 있는 맹점을 드러내고, 이 생명안보 전략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들과 라포를 쌓아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통해 ‘박멸의 공존’ 시리즈는 뉴트리아 제거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외래종-토착종의 이분법적 서사 속에서 인간중심적, 특히 국가 기관을 통해 수행되는 생명안보의 구체적인 방식과 그 사이에서 이를 집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글은 김아람의 ‘박멸의 공존’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인간 너머의 서사들의 함의를 드러내고, 공존-박멸의 이분법적 서사가 작품 속에서 재생산되 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통해 어떤 대안적 서사가 가능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

생명안보(biosecurity)라는 개념은 국가의 통치성(governmentality)과 생명정치(biopolitics)의 복잡한 연결을 통해 작동한다(Collier et al, 2004). 국민국가의 영토 내 어떤 물질, 생물은 진입이 허용되고, 장려되는 반면, 어떤 종들은 이동과 국경 진입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물학적, 정책적 판단의 과정이 작동한다. 동시에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이미 국가의 영토 경계 내 자리잡은 생명에 대한 제거/방역, 공존/공생에 대한 생명정치적 판단 과정이 작동한다(김준수, 2019; 2021). 이 과정에는 특정 종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심상지리, 상상력들이 조형되고, 그 들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특정 방식으로 생산되는 과정을 경험한다(Hinchliffe, 2001). 생명안보의 작동 방식이 획정되는 과정에서 생태보전과학의 지식생산과정과 미디어에서의 특정 종에 대한 이미지들은 “비인간들의 인종적 순수성(racially pure forms of nonhuman nature)” 을 촉진하는 생명정치적 과학(biopolitical science)과 정치생태학적 상상력(political ecological imagination)을 만들어낸다(Biermann, 2016; Biermann & Anderson, 2017).

김아람 작가의 박멸의 공존 시리즈는 한국의 외래종에 대한 생명안보가 뉴트리아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문제시한다. 작품에서 작가는 낙동강유역환경청, 뉴트리아를 포획하 여 1억원을 벌었다는 사냥꾼,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들을 만난다. 이들은 각각 국가영역의 정책, 이에 조응하는 사회의 모습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공존을 위한 박멸” 즉 박멸의 공존은 불가피하다는 서사와 이 과정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보는 사람들의 비인간과의 “전쟁 서사”가 제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작품 속에서 ‘뉴트리아의 시선’을 통해 낙동강의 경관을 비춘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김아람 작가의 박멸의 공존 시리즈는 외래종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어떤 구조적 접근이 가능할지에 대한 대안 서사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인간 너머의 지리학에서는 인간과 자연 관계성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대안적 접근 가능성을 타진하며 이론적, 방법론적, 실천적 접근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따라서 이 논평에서는 인간 너머의 지리학의 이론적 지향 속에서 인간-자연 관계성을 재조정해볼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들을 제시함으로써 ‘박멸의 공존’ 시리즈 속의 서사가 비인간과 인간의 전쟁과 대결, 제거와 포획의 서사가 아니라 종 간 정치(interspeices politics)의 문제를 인류세의 예술이라는 장르 속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뉴트리아의 정치생태학적 재현의 문제(representation question)를 다룰 필요가 있어보인다. 특정 종에 대한 정치생태학적 상상력은 특정 종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경관을 그려내고 그들의 물질적, 생태적, 생물학적 관계성과 교차시켜 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어떤 방식으로 특정 종을 재현함으로써 특정 형태의 인 간 개입을 유발하고 이를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Linehan, 2014). 특정 종에 대한 이런 심상지리는 실제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특정 종이나 공간을 타자화시킴으로써 이들 에 대한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강화시킨다(Gottdiener, 2010).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뉴트리아의 이미지를 재생산해왔는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뉴트리아는 “괴물쥐”로 표상되고, 습지환경을 파괴하는 포악한 괴수로 표방해오지 않았는가? 김아람 작가 역시 뉴트리아의 재현된 이미지에 대한 문제를 작품을 통해 드러냈다. 특히 뉴트 리아 헌터와의 긴밀한 라포를 통해 실제 미디어에서 “원했던 이미지”를 만들어 갔음을 폭로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마지막에 등장하는 ‘뉴트리아의 시선’에는 낙동강 물 속을 유 영하는 뉴트리아가 포착한 경관에는 또다른 외래종 큰입배스가 유유히 지나간다. 괴물 쥐의 이미지, 토착종을 교란하는 침입자의 이미지는 외래종들이 새로운 서식지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이다. 이런 방식의 재현을 통해서만 타자화된 종을 ‘개체 수 조절’ 혹은 ‘박 멸의 과정’을 윤리적, 정책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재현의 문제와 더불어 뉴트리아를 둘러싼 지식생산의 문제 역시 다뤄질 필요가 있어보인다. 환경부를 필두로한 국립생태원, 낙동강유역환경청 등 다양한 국가기관과 대학에서 이들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생산해낸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실제 오랜 시간 동안 뉴트리아 포획활동을 해오던 사람들의 경험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보인다. 특정 종에 대한 과학지식의 생산 과정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특정 종의 특정한 습성에 주목한다 (Biermann, 2016). 종을 단위로 작동하는 생명안보 전략들은 이런 ‘과학지식’에 근거하여 박멸의 과정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종을 단위로,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포착된 물질성만으로는 그 종의 온전한 존재론을 포착할 수 없다(김준수, 2021).

 

이런 문제들은 최근 보전생태학(conservation ecology) 내에서도 문제시 되고 있다. 기후변 화로 인한 서식지 변화, 종의 이동 문제, 교란과 교잡의 문제가 자연과 공간을 고정된 것으로 바라보거나, 특정 외래종의 문제를 하나의 지역적 문제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문제해결식” 의 접근법, ‘보전되어야할 것과 되돌아가야할 자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문제는 기존의 보전생태학 지식에 대한 도전을 불러오고 있다(Hanson, 2021; Braverman, 2015). 따라서 박멸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대중적 이미지와 이를 정당화해주는 지식생산과정 모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탈-토종(post-native) (Hill & Hadly, 2018)’, ‘탈-정상 보전생태학(postnormal conservation) (Neves, 2019)’와 같은 새로운 자연 개념을 통해 뉴트리아의 생명안보 문제를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아람 작가의 박멸의 공존 시리즈 외연의 확장을 위해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는 과정도 동반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 작품은 다양한 인간 집단(국가-헌터-동물보호단체)과 뉴트리아가 맺고 있는 (이해)관계자의 다양성을 보여주지만, 이들이 맺고 있는 관계성의 성격은 ‘어쩔 수 없는 박멸’로 다소 한정된 것처럼 읽힌다. 이는 김아람 작가가 뉴트리아 박멸 문제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자 했는지와 어떤 방식으로 이를 풀어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방법론의 문제로 돌아간다.

먼저 김아람 작가의 박멸의 공존 시리즈가 제시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는 다소 명확해보인다. 뉴트리아를 둘러싼 생명안보 수행 과정을 문제시하고 박멸을 통한 공존이라는 다소 기이한 형태의 현상황을 고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뉴트리아였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한국의 환경 부는 2023년 기준 38종 (동물 21종, 식물 17종)의 생태계교란 생물을 지정하고 4종의 생태계 위해우려 생물을 규정하고, 총 570종이 넘는 생물을 유입주의 종으로 예찰하고 있다. 이 생물들 모두는 각기 다른 정치생태학적 맥락 속에서 국가의 생명안보 시선에 포착되었다. 반대로 작가의 시선에 왜 뉴트리아를 작업 대상으로 삼았는지, 이 종을 통해 어떤 구조적 맥락이 더 잘 포착될 수 있었는지, 어떤 문제에 집중하고자 했는지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생태계교란 생물 중에 유일한 포유류이며, 미디어의 주목을 많이 받았고, 대중들로 하여금 잔 혹한 절멸과정이 강력한 정동(affection)을 불러오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작품 속 동물자유연대 구성원의 진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박멸의 공존 시리즈가 드러내고자 했던 외래종 생명안보의 모순은 결국 모두 인간들의 목소리 (낙동강유역환경청 공무원, 헌터, 동물자유연대)를 통해 드러났다. 물론 작가는 뉴트리아의 시선을 작품 마지막에 제시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뉴트리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물 질성과 역사성은 본격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인간 너머의 지리학 등 최근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에 주목하고 있는 연구들은 비인간 행위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맥락성을 통해 구조적 문제들(국가-사회-자본, (탈)식민)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나 박멸의 공존 시리즈에서는 전격 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론을 ‘인간의 목소리’에 의존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공존의 문제가 인간의 선택에 맡겨질 것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방법론적 인간예외주의(methodological human-exceptionalism)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우려 된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뉴트리아가 가진 생태학적, 생물학적 습성, 한국에 도입된 역사 적 맥락과 정치적 과정, 지금의 상황에 오기까지의 물질적, 역사적 과정을 보다 진지하게 기술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하자면, 뉴트리아를 통해 한국의 발전주의 동물(developmental animal)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어보인다(김준수, 2018; 황진태 외, 2019). 한국의 발전주의 과정 속에서 외부로부터 인위적으로 도입된 생물들과 새롭게 형성된 경관에 대한 고려를 통해 뉴트리아라는 종이 경험해온 역사적, 정치적 과정을 보다 풍부한 담 론을 통해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구조적 네러티브와 더불어 작가 본인의 경험에 대한 기술 역시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탈식민연구에서 중요한 자기기술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도 방법론적으로 필요해보인다. 작가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 서 “공존을 위해서 박멸의 필요를 납득하게 되는 과정”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 과 정에서 작가 본인의 경험과 공존과 박멸에 대한 관찰자로서의 경험을 보다 두텁게 기술하는 과정을 고려한다면, 보다 다양한 대안적 서사 구성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뉴트리아를 통해 어떤 담론, 서사 구조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로 보인다. 특히 국가와 사회, 자본, 문화적 과정에 대한 기술과 더불어 뉴트리아 자체가 가지고 있 는 물질성을 어떤 방식으로 문제시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따라 대안적 생명정치(alternative biopolitics)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Gabardi, 2017: 114). 이를 통해 김아람 작가 의 박멸의 공존 시리즈가 보다 다양한 인간-자연 관계성을 포착하고, 실험적인 재현방식과 대안적 담론으로 인류세 예술의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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